끽다래 금당 최규용/금당과 끽다래

육우다경연구회 회보 창간에 즈음하여

매공tea 2009. 7. 11. 07:49

 

육우다경연구회 회보 창간에 즈음하여

 금당 최규용


  1200여년(건중 원년 780년)전에 저술된 <육우다경>을 보면, 신령스런 차나무는 먼 남방에서 자란다고 기록되어 있다. 육우의 고향이 중국의 북쪽 호북성이니 그곳에서 남방은 운남성과 귀주성을 말함일 것이다. 오늘의 미얀마, 라오스 국경지대가 아닌가 싶다. 바로 이곳이 세계가 인정하는 차나무의 원산지인 것이다.

  차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 온 것은 통일 신라시대 전후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귀족사회와 불교계에 파급되어 국가적 행사나 서원 등에서 헌다함으로써 오늘 날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음다풍속이 대중화 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차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고 중국에서 수입하여 사용됐기 때문이다.

  통일 신라시대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령공이 중국에서 차씨를 구해와 흥덕왕 3년(828년)지리산 화개골(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심어 영호남 일대에 차가 대량 재배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어나 그 후에도 일부 특권계층에서만 차를 즐겨 오다가 현대에 와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차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차가 文化飮水로써 우리나라에 보급되긴 했으나 문헌적으로 저술된 책은 많지 않다. 본인이 중국의 육우가 지은 茶書인 <육우다경>을 보고나서 이 책이야말로 차를 마시는 사람이나 재배하는 사람 그리고 제조하는 이들 모두 반드시 읽어야 할 매우 유익한 다서라고 말하게 되었다.

  본인은 그 동안 다도와 차문화를 연구해오면서 <육우다경>도 연구하게 되었다. 내가 육우다경을 연구하게 된 것은 일본의 육우다경연구회 현판식을 가진 이후 많은 육우다경 회원들과 함께 공동연구 해 왔었고, 1989년 10월 하순에 일본 동경서 한중일 육우다경연구회 세미나가 있었는데 거기에 참가하게 되어 국제적으로 <한국육우다경연구회>가 있다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

  1989년 10월 14일 본인은 평생 소원이던 육우의 고향인 호북성 천문시를 방문하여 육우의 유적들을 전부 답사하였고, 육우가 마지막까지 생활했던 절강성 호주를 방문하여 그가 죽을 때까지의 유적을 살핀바 있다. 그리고 귀국하여 ‘차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부제를 붙인 <중국차문화 기행>이란 책을 발표하였고, 1991년 육우다경연구회를 부산시에 문화단체로 정식 등록을 하였다.

  1992년 나는 다시 천문시로 가서 한국 육우다경연구회와 중국 육우다경연구회와의 자매결연을 맺고 돌아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육우다경연구회>는 한 중 차문화 교류에 큰 기여를 했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육우다경연구회가 이번에 회보를 발간하므로써 과거 우리의 다도 역사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고 또 한국과 중국과의 차문화를 연구 발전시키는 계기를 삼고자 한다. 이제 茶友들과 더불어 그 동안 소망했던 회보를 발간하게 되어 기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회보를 만드느라 수고한 회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喫茶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