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 문화의 력사
1. 홍차의 탄생
복건성 숭안지역에서 1600년초부터 홍차(초기 정산 소종, 무이차)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에서 반발효 우룡차와 더불어 인기를 끌자, 완전발효차인 홍차 생산을 늘렸다.
1784년에는 기문홍차가 탄생했다.
당시 유행한 중국풍을 타고 중국홍차가 성행했다.
16세기 들어 유럽으로 전파된 차는 녹색이었고 건조시켜 압축한 덩어리로 오랫 동안 항해로 품질이 손상되는 경우 많았다. 특히 덩어리에서 건엽상태로 상품이 바뀌매 따라 손상이 더 심했다. 이런 이유로 오랫 동안 보관되고 운송하기에 적합하기 위해 건조 시키기 전에 자연 산화시켜 어두운 적갈색을 내게하는 제답법으로 홍차를 생산하게 된다.
2. 영국으로 유입과 보급 - 유럽 전파
① 유럽에 처음 소개한 네덜란드
1610년 일본 히라도지방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박에 의해 본국으로 차가 전해진 다음 프랑스, 독일을 거쳐 영국으로 전해졌다. 결국 영국인이 처음 마신 차는 일본 녹차이지만 곧 일본 쇄국정책에 따라 본격적으로 차가 공급된 것은 중국을 통해서이다.
당시 1557년 포루트칼이 중국과 무역을 먼저 했지만 대부분 유럽나라들과 같이 선교와 후추 등 향료 수입에 열을 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자바섬 빤담에서 첫무역을 시작하여 1606년 처음으로 나가사키현에서 구한 일본차와 마카오에서 포르투칼인에게 구한 중국차를 암스테르담으로 보냈다.
② 영국이 홍차문화를 형성한 계기
1662년 찰스 2세와 포르투칼 공주 캐더린(Catherine Braganza 1638-1705) 간의 혼인이 계기가 되어 홍차문화가 형성 되었다. 당시 포르투칼은 설탕 공급을 독점하고 있었기에 차도 귀중품인데 거기에 귀중품인 설탕을 넣어 마시던 풍은 왕족과 귀족에게 급속히 퍼져 나갔다.
③ 차를 언급한 문헌
㉮ 항해기 집성 ; 1559년 기암 바티스타 라무시오(Giambattista Ramusio, 이탈리아 공무원) - “해지 마호메드로부터 중국 쓰촨성 사람들이 ‘차이’라는 허브를 복통과 동통에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기록. 유럽에 차를 최초로 소개.
㉯ 중국지 ; 1570년 가스파 다 크루즈(포르투칼 선교사) - “중국 상류층 집에 초대되면 꼭 차를 접대 받는데 이 음료는 붉은 빛의 쓴맛이 난다.”
㉰ 이탈리아 지오반니 보테오 ;"중국인들은 풀로 만든 쥬스를 술 대신 마시는데 이 음료는 술로 인한 독성을 없애주는 등 건강을 지켜준다.”
㉱ 의학론 - 1641년 니콜라스 털프(의사) ; 차의 약용 효과에 대해 언급
㉲ 코텔리우스(의사) ; 1670년 옹호론에 편승해 1600년 중반까지 꾸준히 증가하였다.
3. 동인도 회사 (East India Company)
영국 동인도회사 (1600 - 1873)
네델란드 동인도회사 (1602 - 1799)
덴마크 동인도회사 (1616)
프랑스 동인도회사 (1664 - 1719)
스웨덴 동인도회사 (1731)
차는 17세기초 네델란드 해상무역에 의해 유럽에 전해졌다. 특히 영국은 홍차가 문화와 산업발전의 근간을 이루기도 했다.
네델란드 동인도회사에 의해 처음 차가 수입되고 1669년에 이르러 영국 동인도회사가 독점적으로 차가 들어 옮으로 차 가격이 상승하여 고위층 전유물이 되었다.
4. 공공 장소에서의 차
- 커피하우스, 티가든, 온천, 티룸
1) 커피하우스
유럽에 커피가 전파되고 각국에 커피하우스가 만들어졌다. 1683년 런던에 3000여곳 커피하우스가 있었다고 한다.
커피 외에도 차, 설탕, 담배 등 해외에서 건너 온 이국적인 기호품을 즐길 수 있었다.
①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1650년도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열렸다.
② 파스카 로제 커피솝
파스카 로지는 런던 콘힐지역에 개점.
③ 조지 인 (George Inn)
1542년 설립된 것으로 보이나,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이 건물은 영국문화제보호청에서 관리하는 역사 깊은 곳이다.
④ 개러웨이스 (Garraway's)
개러웨이는 엘 포드 커피하우스 부지를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구입하여 첫 번째 커피하우스를 개점하여 차별화하였다.
1657년 런던에서 담배 상점과 커피하우스를 같이 운영하던 코마스 개러웨이에 의해서이다.
이곳에서 파는 차는 질병예방과 치료에 효험있다고 알려져 상황을 이루었다.
⑤ 로이드 커피하우스 (1691 - 1785)
무역업자들이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장소로 떠오르면서 보험업자들이 모이는 최적장소가 되었다.
“로이드 뉴스”라는 소식지를 만들어 최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장소가 되었다.
18세기 커피하우스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세게 최대의 보험회사 - 로이드회사로 전환
⑥ 골든 라이언 (Golden Lyon)
여성 출입금지령 해제되고, 남녀 평등을 이끌었다.
⑦ 그레시안 커피하우스
과학자 모임인 왕립협회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⑧ 라이온스 티숍
모자, 앞치마, 빳빳한 깃을 세운 단정한 옷의 종업원으로 유명
⑨ 토마스 릿지웨이
차 소매 판매 가게
⑩ 에어레이티스 브레드 캠퍼니 (A.B.C.)
주요 업은 빵 굽는 것이었지만, 빵 사러 온 고객에게 차 대접하여 반응이 좋아 판매까지 하고 현대 티숍의 시초가 된다.
2) 티 가든 (Tea Garden)
유독 자연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정원문화와 차문화가 결합된 사교장소이다. 봄부터 늦여름까지 문을 열었다.
티가든은 사교장소와 연애장소가 문턱이 낮아져 노동자들이 이용하고 또 19세기 사교문화가 가정의 애프터눈티로 옮겨감으로 티가든은 사라져갔다. 하지만 1868년 빅토리아여왕이 버킹엄궁에서 왕실이 티파티를 개최한 뒤 티가든 파티가 다시 유행하였고 영국적 행사로 다시 자리 잡았다.
① 복스홀 가든 (Vauxhall Carden)
가장 유명하여 각종 행사와 볼거리, 게임, 곡예와 폭포가 함께 어울러졌다.
개장한 날에는 왕세자도 자리를 함께 해 숙녀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었다.
또한 정원 안에 마련 된 중국풍 다실에는 귀부인들이 중국옷을 한 종업원들에게 차를 대접 받았다. 이 때 테이블 위에 T.I.P.S.라 써 있는 작은 상자가 있었는데 이는 “To Insure Prompt Service"의 약자로 서비스를 원할 때 즉시 이행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의미로 대신 손님은 이상자에 돈을 넣게 되는데 팁을 주는 관습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② 화이트 컨딧 하우스
이즐링턴 소재 - 화이트 컨딧의 빵
③ 멀베리
복스홀 가든, 화이트 컨딧 하우스 등을 다니며 멋을 아는 사람들이 다니는 곳
④ 메얼리어본, 라넬래프, 턴브릿지 웰즈
⑤ 핀체스 그로토
술집인데 티가든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초기 많은 티가든은 차가 영국에 들어오기 전 보편적인 음료인 에일 선술집과 많이 연결되어 있었다.
⑥ 백니지 웰즈
각종 티 푸드와 차가 매우 풍부했다.
3) 온천 (Spa Towns)
종교개혁 뒤 순례지였던 성천을 중심으로 온천이 급속하게 발달했다. 이러한 변화와 자본주의 발전으로 의료인 집단, 사업가, 온천요법, 숙박, 볼링, 승마 등 건전한 스포츠로부터 퇴폐적 향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져활동을 상업화했다.
기존 귀족에게 한정되었던 레져활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신분 상승 위한 모방욕구를 부추겼다.
1663년 처음으로 왕과 왕비는 바스(bath)와 턴브리지 웰스(Tumbridge Wells)를 찾았다. 17세기 중반 이후 영국 온천들은 본격적으로 연회장과 커피하우스를 갖추기 시작했다.
4) 티룸 (Tea Room)
1840년 금주운동이 시작되면서 금주업소들은 커피만 팔다 차츰 다양한 음료를 팔게 되었다. 그러면서 19세기후반 고급 티룸으로 바뀌었다. 커피하우스는 남성만 이용할 수 있었으나 티룸은 여성들도 차와 식사를 하며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① Aerated Bread Co (A.B.C. Room)
제과체인점인 ABC는 최초로 티룸을 개설하였다. 50-60개 분점을 개설할 정도로 흥행했다. 그러자 곧 유행이 되었고 티룸 분위기는 점심식사 혹은 오후 휴식식사에 사무실이나 집에서 벗어나 휴식하는 장소로 떠올랐다.
② 글래스고의 크랜스턴 티룸
③ 라이언스 티숍
화려하고 웅장한 티숍으로 단정한 종업원으로 유명하다. 런던 라이언스는 값싸고 맛있는 음식으로 모든 계층과 연령층의 여성들에게 편안하게 휴식을 주었다.
④ 케이트 크랜스턴 티숍
⑤ 웰로우 티룸
낡은 빈민가 아파트를 개조한 티룸
⑥ 매킨토시 티숍
환상적인 인테리어
⑦ 국회의사당 티룸
⑧ 주택을 찻집으로 개조
시골의 아름다운 정원을 찻집으로 개조해 주말이나 휴일에 손님을 맞았다.
5. 보스턴 티 파티
17세기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 영향으로 영국식 차문화가 확산되면서 차와 다기들이 아메리카 식민지로 수출되는 중요한 품목이다. 그러나 그 당시 차세금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밀수입이 성행했다.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면서 세금을 높이는 한편 자국민들이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재수출할 경우 세금을 돌려 주는 법을 만들었다. 이런 악법 강행에 대해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영국제품 불매운동을 벌렸다. 미사추세츠에서 격한 반발이 일자 무력으로 진압한 영국군에 의해 4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보스턴학살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영국은 폭동 확산을 막기위해 “차”를 제외한 관세를 내렸다. 그 뒤 영국동인도회사의 경영부실과 차 재고,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 폭락으로 본토 내 큰 곤란을 겪게되자. 이를 타개하려고 1773년 차조례를 제정하여 동인도회사에게 무관세로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차를 독점 판매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그러자 미국 내 상인들이 크게 반발했다.
식민지자치정부에 대한 지나친 조세간섭에 격분한 과격파들이 인디언으로 변장하여 1773년 12월 16일 밤 보스턴항구에 정박 중인 동인도회사 실린 차를 모조리 바다에 던져 버리는 일명 “보스턴 티 파티”를 일으켰다. 그리고 보스턴 뿐 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혁파운동이 일어나자 영국은 대대적인 보복에 나섰지만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더 반감하여 무력 충돌을 일으키고 마침내 독립전쟁으로 발전하여 “미연방”을 건국 했다.
6. 아편 전쟁
19세기 이르기까지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량의 차, 비단, 도자기 등을 수입했지만, 수출품은 고작 약간의 모직물과 인도 등에서 구한 향료가 전부였기에 나머지는 은으로 거래를 하였다. 이를 감당못한 영국은 중국에 자유무역을 요구하였지만 중국이 거절하자, 아편을 수출하여 은을 얻는 방법을 찾았다. 중국에 아편을 밀수출하자 중국 내 은값이 폭등하였다.
그리고 아편 중독자가 크게 늘어나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에 중국 황제는 영국 상인으로부터 아편을 몰수해 버리자 영국은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이것이 아편전쟁(1839-1842)이다.
전쟁에 참패한 중국은 영국과 남경조약을 맺고 홍콩을 양도하고 아편 배상금을 2100만 달러 지급하고, 광동 하문 복주 영파 상해 등 5개 항구를 개방했다.
7. 티 레이스
1833년 차무역에 대한 동인도회사의 독점권이 폐지되자, 새로운 차 무역상이 생겨나고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차 수입량이 늘어나고 구입이 쉬워지면서 소비가 늘어나자 ‘차 신선도’가 중요시 되었다. 빠른 시간 안에 영국으로 실어나르기 위해 1840년 후반 괘속범선인 클리퍼시대가 막을 열면서 티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수에즈운하 개통으로 티 레이스도 막을 내렸다.
8. 차와 도자기
① 중국
중국 도자기 본산은 장시성 포양호 동쪽 기슭에 위치한 경덕진이다.
원나라 때 많은 도공들이 모여들고 송나라 때는 왕실에 공납하였다.
9세기 이전 중근동지방과 동남아시아에 자기를 수출했던 중국은 페르시아를 거쳐 유럽에 자기문화를 전파했다.
인도 항로가 열린 뒤 경덕진자기는 유럽에 전파되어 신분 상징이 되었다. 유럽가마들은 경덕진을 모방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추구했다.
마침내 중국 자기 비법을 발견하자 모방에서 유럽만의 독창성의 본 차이나를 발명 하는 등 세계도자기 문화 중심이 중국에서 유럽으로 옮겨간다.
② 일본
아리타현에서 구워진 도자기가 이마리항에서 수출하였기에 “이마리도자기”라 불렀다. 조선백자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한 이마리도자기는 중국이 명에서 청으로 왕조가 바뀌는 혼란시기에 호기를 맞는다.
당시 경덕진 청화백자를 수입하던 네덜란드동인도회사는 대체품으로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일본 아리타가마에 중국풍 청화백자를 굽게 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도자기산업은 큰 발전을 하였다.
청나라가 안정되자 다시 유럽시장은 다시 중국도자기가 늘어나게 되었지만 일본 특유의 도자기도 인기를 얻었다.
③ 프랑스
경덕진의 청화백자와 파미유 로즈, 파미유 베르라는 색채 자기 역할이 커 바로크양식과 로코코양식 흐름과 어루어진다.
연질자기 파이앙스를 생산하는 세브르자기와 도기에 주석을 함유한 파이앙스도기는 유명했으나오트비엔비장서 고령토발견으로 자기를 생산한다.
④ 독일
마이센 자기
⑤ 영국
㉮ 웨지우드
도자기를 예술 차원으로 높임.
폼페이 고전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무광택의 백색문양으로 장식한 웨지우드 상징인 재스퍼(Jasper)를 개발한다.
㉯ 민턴, 로얄 우스터, 로얄 크라운더비, 스포드, 첼시
영국 도자기회사들은 본차이나다기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국민음료가 된 차 덕분으로 대부분 가정에서 다기는 필수품이 되었다.
9. 영국 차문화 현재
미국 차수입상인 토마스 설리번에 의한 인스턴트식 티백 등장으로 차문화가 간편화되면서 커피와의 경쟁이 가능하게 되고 이로인해 차산업은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된다.
제조, 유통, 판매를 모두 관리하는 대형 차회사가 생겨나고 블랜딩기법도 향상되고 다양해져 차전문점, 대 소형 슈퍼마켓, 인터넷 쇼핑몰 등 소비자 접근성이 향상되었다.
커피하우스, 티숍, 차정원 등의 공간은 테이크 아웃 형태로 간소화 되는 등 새로운 문화가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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