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공 차 한잔 마시다/차 마시는 사람들

[스크랩] 불교의 진리추구방향

매공tea 2008. 11. 26. 20:57

 

불교의 진리추구방향

 

삼보에 귀의하오며...

 

불교동(BUD)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제가 지금까지 쓴 글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동국대 고익진 교수님으로부터 진솔한 부처님의 설법을 배우고 정진한지도 어언 10여년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그 전에 사찰 청년회를 5년여 돌아다니는 동안 체계도 없이 배우던 시절, 그러나 많은 것은 들었지만 답답함이 더더욱 몰려오던 참에, 선생님으로부터 근본불교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선과 교가 따로 이고 돈오와 점수가 따로 이며 소승과 대승이 따로인 듯이 착각하였던 오해도 어느덧 안개 걷히듯 사라졌습니다.

제가 불교동에 주로 올린 글은 불교를 공부하는 방향에 대한 글이 주 였으며,구체적인 내용은 사실 언급을 피하였습니다. 방향이 서면 바로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를 처음 접하는 분께는 불교교리의 개괄적인 윤곽을 확실히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불교를 오래하였더라도 어딘가 모르게 헛점이 있는듯하고 체계가 잡히지 않는 분께 한줄기 조그마한 빛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입니다.

한 미천한 중생의 글이지만 읽어주시어 중생의 잘못된 깨달음을 지적하여 일깨워 주신다면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올 부처님 오신날은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일승(一乘) 김근식 합장.

 

     

 

 

 

 

I. 불교의 진리추구방향

 

 

1. 진리 추구 자세

 

 

2. 진리로의 접근방법

 

 

3. 부처님 설법방법(교설방법)

 

. 수유경의 비유

 

. 계단을 올라가듯이

 

. 성급한 구도심

 

. 한 회원 법우님께 드리는 글.

 

 

II. 깨달음에 이르는 단계

 

 

1. 경전의 체계적 구성과 사유(참선) 대상

 

. 경전의 체계적 구성

 

. 경전의 법상체계(근기설법)

 

. 경전의 세부구조와 깨달아야 할 대상

 

. 용어해설 및 아함부의 체계적 구성

 

 

2. 깨달음의 방편 ()

 

. 12연기의 구성과 접근방법

 

. 18 66법에 대한 깨달음의 방향

 

. 6, 5 4제설의 핵심부분

 

 

 

III. 업설(業說)토론

 

 

1. 부처님 오심

 

. 전생

 

. 탄생

 

. 싯달타의 출가

 

 

 

 

 

2. 법상토론

 

. 외도비판

 

. 12처설

 

. 업설(인과법)

 

. 세상을 맑게 살기(쉬어가는 마당)

 

. 12. 3법인

 

. 4무량심

 

. 업설의 한계극복

 

. 편지로 오고간 법상토론

 

 

I. 불교의 진리 추구 방향

 

 

1. 진리 추구 자세

 

종교의 종류에 대한 형태를 분석한 보고에 의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유심히 읽어보면서 나의 종교적 성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첫째가 "청원태" 인데 이는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스스로가 믿는 절대자에게 구원하는 형태로써 대부분의 ''을 믿는 대부분의 종교에서 취하는 형입니다. 물론 신 중심 사상이 아닌 불교에서도 상당수 불교신자도 이에 포함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희구태" 로써 세상의 진리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정진해 나가는 형태입니다. 현재 깨달은 내용이 궁극의 진리인지를 각 법상의 단계마다 재검증해 나아가는 형으로 자기가 모르는 부분을 깨달은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의 신분에 관계없이 그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준비된 수행자를 말합니다.

셋째로 "채주태" 로써 진리를 증득하여 궁극의 진리에 머물러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부처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사람들이 진리를 공부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가 궁극의 진리를 증득하였다고  착각하여 그 누가 말을 해도 마음에 문을 열지 않고 자기가 최고라고 하는 부류의 수행자도 물론 포함되죠.

이 순간에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지내왔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나는 선재동자와 같은 "희구태"로써의 자세로 진리를 깨닫고자 정진 수행하고 있는지를......

 

2. 진리로의 접근 방법

 

법화경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심은 일대사 인연이라고 하십니다.

"부처가 출현함은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와 똑같은 지견을 갖게 하고자  함이다"라고 누누이 강조하시고 깨달음의 결과에 대하여는 영원히  묻어주시고, 길을 따라 정진 수행하여 깨달은 자만이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출가하시게 된 배경도 그렇고 육사외도를 스승으로 모셔 가면서 고행을  하신 인연도 그렇고, 고락(苦樂)의 극단을 버리고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사실은 먼 옛날 이미 깨달음을 얻으시고 우리들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하기 위함이라 합니다.

싣달다 태자가 세속적인 모든 행복을 구족 하였지만, 결국 출가를 하신 뜻을 자세히 참구해 볼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

성문 밖을 나가 생노병사의 모습과 수행자를 보시고 출가를 하신 뜻에 이미 부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첫 번째  목적이 여기에 있음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즉 우주의 실상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보다는 우선 현실적으로  괴로운 생노병사의 연기를 깨달아  이로부터 해탈해 나아가라는 뜻을 먼저 비추고 계십니다.  (한글 아함경 35 ~64)

잠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왕사성 가는 길의 비유를 읽어보면서 부처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부처님은 왕사성 가는 길에 대해서 가는 길 자체를 가는 순서대로 말씀하십니다. 중생들에게 왕사성 가는 길을 순서대로 가르치신 비유의 참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어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왕사성 가는 길을 가는 순서대로 가르쳐 주어도 가고 못 가고는 제각기 비구의 행에 달려있다"라고 합니다..  이하 생략........

좀더 구체적으로 무엇부터 우리들에게 해결하라고 하시는지를 다시 한번 만동자와 화살의 비유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먼저 해결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본질과, 깨달은 후의 결과를 먼저 알아보려고 할 것인가? 이는 마치 왕사성 가는 길을 익혀 왕사성에 가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왕사성을 먼저 알려고 노력할 것인가와 같습니다.

다음의 불교 석학들의 글을 일부 읽어보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불교의 원시경전은 아함경이며, 그 중에서도 장아함이 제일 앞에 위치한다. 그런데 이 장아함을 볼 때 그 제일 처음에 우주의 기원이나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과거 일곱 부처님의 탄생.출가.수도.항마.성도.전법륜.열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종교에서는 우주론이 설해질 장소에 불교는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가 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불교의 우주론적 신화에 해당시킬 수 있는 것은 세기경(世紀經)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경은 장아함의 제일 끝에 수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세기경은 남방불교의 불전에는 수록되어 있지도 않으니 이것은 그 경전의 성립이 매우 늦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만큼  불교에서는  중요시되지 않았던 내용이라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부처님은 우주의 기원이나 본질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언어의 해설을 좀처럼 베풀려고 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부처님 당시에 만동자라는 비구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이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해명해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매우 불만을 갖고 있었다.

1)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영원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한가, 영원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은가.

2)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한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은가.

3) 영혼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인가.

4) 여래는 사후에 있는가, 없는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가.󰡓�

이에 대한 석학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 열 네 가지 문제는 분명히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에 관련된  것들임을 볼 수가 있다.

1)  2)는 세계의 시간적.공간적 성질에 관한 것으로서 종교의 우주론에 관련되며,

3)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으로서 인간론에 관련되고,

4)는 그러한 인간이 깨달음을 열었을 때의 소식을 묻고 있는 것으로서 생활론에 관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동자는 이러한 문제를 내걸고 만일 부처님께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답변을 해주시지 않으면 수도 생활을  버리고 부처님 곁을 떠나겠노라고 다그치신다. 그는 분명히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에 번민하고 있었으며 그 해결을 부처님에게서 구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에 대해서 부처님은 어떤 답변을 해주시고 계실까. 뜻밖에도  부처님은 만동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고  계실 뿐이다.

‘만동자여, 내가 일찍이 너에게 그런 문제를  답변해 주기로  약속한 일이  있었던가. 그리고 너 또한 내게 그런  답변을 듣겠다는 조건 아래  내게 출가했던 것인가. 그런 일이 없었는데  네 이제   내게 그런 부질없는 항변을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네가 제기한  그런 문제를 내가  설명해 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그것을   너에게 설명해 주고  있노라면 너는 그것을 다 듣기도  전에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비유하건대 여기 어떤 사람이 독무든 화살을 맞았다고 하자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독이 온 몸에 퍼지기 전에 화살을 뽑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고집하여 말하되화살을 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주소는 어디인지  등을 알기 전에는  화살을 뽑지 않겠다고 한다고 하자. 또는 그 화살이 나무로 만들었는지  대로 만들었는지 뿔로 만들었는지 등을 알기 전에는 그것을 뽑지  않겠다고 한다고 하자. 또는 화살촉이  쇠로 되었는지  돌로 되었는지  뼈로 되었는지 등을 알기 전에는 그것을 뽑지  않겠다고 하자.   사람은 그것을 채 듣기도 전에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니라.

너의 질문 또한 그와 같은 성질의 것이다. 그러한 질문은 너의 깨달음과 지혜와 해탈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나니, 네가 성급하게 알고 행해야  할 바는 너의 현 존재가 괴로움이라는 사실과  나아가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길이니라.

중아함( 60)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해서 부처님은 답변을 회피하고 계시는 것다. 그래서 이 열 네 가지 질문을 불교에서는 '무기(無記)'라고 한다. 그러한 질문이 제기될 때마다 부처님은 언제나 침묵을 지키셨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a. 불교의 진리관, 고익진.김운학.목정배 공저, 경서원 1979) 동국                 대 불교학과 교수님들.

b. 전유경 : 중아함경 제 60, 한글아함경 290~296 )

c. 불교의 체계적 이해, 새터출판사, 고익진 지음

 

 

 

출처 : 대승의바다
글쓴이 : 진흙속의연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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