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다래
198?년 7월 전국대학다회연합 운영위 회의에서 나온 기록이다.
이 기록을 통하여 당시 보성지역 차농민들의 실상을 알 수 있다.
- 보성농민차 운동 중간 보고
가. 차엽이 80kg당 3000원에서 2400원으로 하락함에 차밭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
나. 차밭을 50여 가구가 소유하였는데 17개 가구만 소유한다.
다. 차밭을 90%이상이 농민소유였는데 70%로 하락했다.
라. 법으로 아무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마. 7대 기업만 제조 판매를 할 수 있다.
바. 질 향상을 위해 기업들만 만들기에 덖음차만 기계로 대량 생산한다.
마. 일본 차나무로 일본 기계로 일본 다도로 마신다.
이 당시 법으로 차제조를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기에 차밭이 있는 농민들은 제다기업에 원료공급만 가능했다.
그래서 전라도 광주 조선대학교 백악연다다회가 <보성농민차 운동>을 벌렸다.
이유는 단지 하나 법을 완하하여 농민들도 자기 손으로 차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무나 차를 만들어 팔고 있는 것이 다 이 운동의 영향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은혜를 모르고 있다.
자료를 모아 숨은 역사를 밝혀야 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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