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국가의 차 문화
1. 우리차의 전래
삼국사기 신라본기 흥덕왕 3년조에 나타는 차의 전래 :
"흥덕왕 3년에 대렴이 당에서 차씨를 가져와 흥덕왕의 명령으로 지리산에 심었다.
차는 이미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미나 흥덕왕때 이르러 성행하게 되었다."
2. 가야
삼국유사 제2권 '가락국기'에 신라의 문무왕이 김수로왕 17대손 갱세급간에게 제전을 주며 명령을 내리니 왕명을 받들어 다시 수로왕의 제사를 지냈었는데 차, 술, 단술, 떡, 밥, 과일 등 제물을 빠뜨리지 않았으며 매년 정월 초삼일과 초 이렛날 오월 오일과 팔월 초닷새와 보름날의 다섯 날을 제사 날로 정하고 그후 330년 동안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3. 고구려
고구려는 엽전 모양의 전차(錢茶)를 사용하였다. 야외에서 차를 끓일 때 사용되었을 굴뚝이 있는 이동식 화덕이 있다.
4. 백제
백제는 문화가 발달했지만 사료가 없어 확인이 되지 않고 있으며, 백제의 귀화승인 行基(행기 : 668~749)가 일본의 東大寺(동대사)에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일본의 <東大寺要錄>(동대사요록)에 전한다.
5. 신라
1) 신라의 차
① 고려의 이곡(1298~1351)이 저술한 기행문인 <東遊記>(동유기)를 통해 신라 화랑들의 차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데 仙人(선인)인 화랑들이 경포대에서 돌화덕, 한송정에서는 돌화덕 이외에 石地(돌못), 2개의 石井(돌우물)을 이용해 차를 끓였다는 기록이 있다
② 이규보(1168~1241)의 <남행월일기>에도 원효대사와 사포스님의 차이야기가 전한다. 원효방에서 원효대사를 모시던 사포스님이 바위틈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차를 끓여 원효스님께 공양 올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③ 충담스님은 매년 3월3일인 삼짇날과 9월9일인 중양절에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전께 차를 공양올렸다. 경덕왕은(764) 미륵세존께 차공양을 올리고 돌아오는 충담스님을 만나 차를 공양받고 그는 안민가를 지어 바쳤다.
④ 신문왕이 아들인 寶川(보천)과 孝明(효명)은 오대산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면서 새벽마다 문수보살님께 차를 공양 올렸다.
⑤ 신라말의 眞鑑國師(진감국사, 774~850)는 唐(당)에서 27년간 공부를 하고 돌아와 지리산 화개곡에 玉川寺(옥천사)를 창건하고 定康王(정강왕)은 옥천사를 雙溪寺(쌍계사)로 고쳤다. 또한 崔致遠奉敎撰(최치원봉교찬)으로 된 그의 비문에는 진감국사의 소박한 차생활과 신라인들의 음다법을 알 수 있다
2) 신라의 음다법
신라시대는 團茶(단차:덩이차)를 사용했는데 단차를 돌솥에 넣고 끓여 차구기로 뜨거나 걸러서 마시는 방법과 단차를 가루내어 끓여 마시는 방법이 있었다.
3) 신라의 차인
원효대사, 설총, 지장법사. 보천과 효명태자, 최치원, 충담사, 월명스님 등.
참고문헌
류건집, 한국차문화사, 이른아침, 2007
석용운, 한국다예, 보람사, 1991
정영선, 한국차문화, 너럭바위, 2003
http://cafe.daum.net/hyunmyoungwon/KM0C/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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