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쿠와 차 한잔 한잔하다/한국차문화사

차도 먹지 않으며

매공tea 2024. 3. 25. 00:11

일제 강점기 글같은데 정확한 정보는 모릅니다.

 

차도 먹지 않으며

玄州

젊은이들의 獨點所로만 여겼던 喫茶店에 요사이 나많은 축들이 진출하게된 것은 기이한 현상이라고 할지 刮目할만한 사실라고할지 좌우간 不思議한 일의 하나인 것은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나란 자신이 그러면 茶店巡禮應分히 하느냐하면 그런 것은 아니나 日前 종로 근방에 있는 어떤 茶店을 들어갔다가 새삼스러히 目睹한 것처럼 놀랐다.

일사불란 아니 일발불란一髮不亂한 두발頭髮에 두줄단초를 단 젊은이들만이 가는 곳이라는 다방에 대한 나의 정의가 보기좋게 뿌서지는 바람에 나는 멍하니 이 기이한 사실에 눈만 똑 바로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서울이면 서울 모든 다방의 현상인지 알 수는 없으나 사실로 나는 돈주고 차사 먹는 다점을 싫어한다. 싫어하는 이유가 돈주고 사먹는 사실만은 아니나 그날 그 다점만을 잡어서 말하더래도 지금까지 다방에 대한 나의 생각이 一種先入見에 지나들 않었던 것만을 안것마는 사실이다.

이전 다방에 대한 나의 생각은 청춘의 우울을 담배연기에 싸서 놓은 곳이 곧 현대 조선이 다방이라는 것을 견지堅持하였다. 혹 친구들을 따라 다방에를 가지마는 물론 다방 그것에 마음이 끌려서가 아니라 친구의 권유에 끌려 부득이不得已 가게된 일이 많았다. 갈 때마다 우리 같은 위인들의 올 때가 아니다고는 늘 생각하지마는 일면으로 싫은 마음을 누르면서 현대감각을 이런 속에서도 맛보는가부다하고 일종의 수련修鍊으로도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상당히 혐기嫌忌를 일으키는 수련도 있다하고 혼자 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일 모레 장가가고 시집갈 젊은 남녀들이 연무烟霧가 자옥한 속에 제멋대로의 포즈를 가지고 빈천貧賤하고 憂鬱?한 표정으로 찻그릇을 들어다보고 있는 꼴을 보면 내 자신이 침울沈鬱해지는 것 같아서 그 무서운 공기에 질식窒息될 것 같은 근심을 많이 하였다. 실로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다방이라하면 청춘들 감각까지는 몰라도 현대의 발랄潑揦한 감각이 있을 것 같이 생각할는지 모르나 실상인즉 그렇지도 않아서 우울憂鬱 권태倦怠 퇴폐頹廢가 엉킨 곳이다.고 나로서 나 독특獨特한 다방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다방일 것이나 많은 축들이 진출하게 될 뿐 아니라 그게따라 다방의 공기도 자식낳고 살림사는 사람들의 분위기雰圍氣를 자아내는 것 같았다. 자식낳고 살림사는 사람들의 분위기라는 것은 사무적이라는 것이다. 벌써 청춘의 감상感傷은 아니다. 어데인지 생활의 집착執着이 뿌리를 박아 보기에 믿음즉한 인상을 주는 축들이 다방이라는 거리의 사랑을 빌어서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영양營養을 섭취攝取하고 적의適宜한 조처措處를 강구講求하는 것 같았다. 다방의 이 傾向을 나는 微笑로서 바라볼 호기심을 느낀다. 두통꺼리의 다방의 우울憂鬱이 이러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밀려서 나가버리기를 나는 바란다.

사무적인 인간들이 다방을 이용한다는 것은 일방으로 조선사람들이 봉건적인 사랑舍廊을 버리고 개방적인 사두街頭로 나오는 것이오. 일방으로 사랑舍廊의 멋의 規格을 버리고 새로운 멋의 규격을 지르려는 것으로도 보인다. 멋을 통해서나 많은 축들의 다방 진출과 그 심리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의 하나이다. 이것은 아직 다방의 멋이 서지 않은 오늘에나 많은 축들의 다방 멋만을 말하기는 어려웁다. 그러나 그러나 아즉 서지 아니한 다방의 멋이 도리혀 이러한 축들을 말미암아 서지나 아니할까도 생각된다. 모든 것의 구극究極을 멋에 붙이기를 선천적으로 좋아하는 조선사람들이니 어떠한 것이 다방의 멋이다고하는 것이 물론 나을 것이다. 아니 다방의 멋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조선사람의 다방 멋은 이러한 것이다는 것을 나는 듣지 못하였다. 다방이 좋다는 심리는 다방 멋을 아직 규격規格하지 못한다. 거기에서 항상 생활의 이상이 구체화해서 비로소 되는 것이다.

다방이 사무적으로 되어간다는 말과 다방의 멋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대척개념對蹠槪念이 서로 될지 모르나 생활에는 유리遊離되었던 다방이 생활의 필요층必要層에 등장하며 생활의 필요를 통해서 생활의 이상이 구상화具象化하지 않으면 멋은 생겨지지 않는 것이라면 다방의 사무화는 멋의 일보전一步前의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차도 먹지 않으면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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