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시러 오세요
뉴제주일보
승인 2020.05.19 21:29
강순희 수필가
끽다래(喫茶來). 하루에도 여러 번 눈을 주게 되는 글귀다.
현관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마주치는 곳, 티브이가 놓인 거실 벽 위쪽에 걸려 있으니 안 보는 날이 없다. 손님이 이 문구에 관심을 보일 때는 얼굴 맞대고 마시는 차 맛 또한 특별하다.
동곡 일타 스님의 필체다. 언제 봐도 묵향이 풍기는 듯 신선하다. 둥글게 붓을 모아 선하게 내린 글발이 오월 목단화에서 풍기는 왕자의 품격처럼 귀하게 와 닿는다.
지인이 일타 스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거라고는 했지만 원본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십여 년 전, 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표구해 제일 반반한 자리를 내주었다. 새 식구로 깍듯이 받아 들였으니 평생 같이 하게 될 것이다.
‘끽다래’ 하면 차 문화 연구가이자 다도 보급가인 금당 최규용(1903~2002)님을 든다.
금당은 일본 유학 시절, 일본의 일상적인 차 문화를 접한 이후 다도 생활을 평생의 반려로 삼은 분이다. 30대에는 중국 상하이에 사업 차 머물며 대륙의 차 문화를 연구했다.
그 후, 일상생활 속 차 마시기 운동을 이끌며 근·현대 한국의 차 문화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다.
이런 노력이 금당의 유명한 차 이야기로 인정됐고 끽다래를 탄생시켰지 않나 싶다. 부산 초읍의 삼광사와 합천 해인사 지족암에 이 글귀를 새겨 넣은 기념비가 있다. ‘끽다래’는 금당의 실사구시로 파고든 끈질긴 집념의 증표임을 알겠다.
차에 얽힌 이야기 중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인 조주선사(778∼897)의 ‘끽다거’(喫茶去)가 있다.
조주선사에게 어느 날 제자가 물었다. “우주의 근본은 무엇이며 부처가 세상에 나툰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주선사의 한 마디, “끽다거” 다른 제자가 가르침을 요청했을 때도 같은 말로 대답했다. “끽다거.”
끽다거 뜻은 ‘차 한 잔 마시고 가시게’이다. 그에 반해 끽다래는 ‘차 한 잔 마시러 오시게’로 풀이한다.
물론 ‘끽다거’는 차나 한 잔하고 가라는 단순한 말이 아님을 안다. 차를 마시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라는 선사의 의중을 담고 있다.
그러나 ’차 한 잔 마시러 오시게‘ 청하는 끽다래 쪽이 정이 감돌아서 나는 좋다.
벌써 오월도 중반이다. 무르익는 계절이 손짓하건만 우악한 풍진을 겪는 세상이라 발걸음은 주춤거릴 뿐이다. 공기의 값어치도 겪어 봐야 무한한 가치를 알 듯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우치게 하는 시간들이다.
간절히 두 손 모으게 하는 요즘이다. 부디 앞으로는 너나없이 ‘차 한 잔 마시러 오시게’ 하는 날들만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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