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수무책 밀려나는 녹차
녹차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고 있다. ‘녹차는 냉하다.’라는 일방적인 주장에 대하여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발효차 특히 중국 발효차에 시장을 내주고 있다. 차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조차 ‘손발이 차고 속이 냉한 사람은 녹차를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으며 녹차를 밀어내고 있다. 우리 녹차를 만들어온 다업종사자들은 중국발효차에 대응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녹차의 비중을 급격히 줄이고 발효차 생산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 차의 대표주자로서 자리를 지켜온 녹차가 그 위치를 잃어가고 있다.
1. 녹차 퇴조의 원인
『차의 냉성冷性에 대한 견해는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을 만큼 일반화되어 있다. 차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은 들었을 법한 이야기가 ‘손발이 차고 속이 냉한 사람에게는 녹차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차와 과학이라는 등식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일부 다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월간 Tea & People 2006.10 「차에 미친 사람들의 담론」)
이러한 기류가 형성된 시기는 중국 발효차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시점과 통한다. 특히 보이차가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10여 전부터 ‘녹차는 냉하다.’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보이차 예찬론자들은 이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보이차를 극찬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개인적으로도 한 몫 거들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일부 보이차 상인들과 중국을 드나들며 보이차 보따리장사를 하던 일부 차인들의 말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것이었다.
시작은 그렇다고 해도 불과 10여 년 만에 녹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고착화되다시피 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는 아닌 것 같다. 몇 가지의 원인들이 겹쳐서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 같다. 녹차에 대한 무지, 녹차의 품질저하, 중국 발효차의 유입증가, 소비자의 감각적 기호, 제다인의 시류 편승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것들이 음해성 정보에 무게를 실어주며 부정적인 분위기를 부추겼다. 특히 녹차에 대한 무지와 품질 저하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우리 녹차산업은 1980 년대에 들어오면서 성장하기 시작했고 1990 년대의 참살이 바람을 타고 2000 년대 초반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그러나 양적으로만 팽창했을 뿐 차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을 보급하거나 제다인력을 양성하는 등의 질적인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녹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차의 원료가 무엇인지조차 몰랐고 차를 마시는 요령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녹차에 대한 음해성 정보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유포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녹차를 마셔왔고 생산지를 순회하며 각기 다른 이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수많은 녹차를 접한 사람으로서 녹차의 품질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차밭에 비료‧농약을 살포하는데 따른 것이 아니다. 이는 생산양의 감소와 노동비용의 증가를 각오한다면 당장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다. 그것은 차에 대한 지식과 경험부족에 따른 제다과정에서 빚어진 품질저하의 문제다. 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소비가 늘면서 녹차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거의 없는 농민들이 돈이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거 차농사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들 중에 상당수는 집안에 솥단지 하나를 걸어놓고 제다인으로 변신했다. 소위 ‘수제手製덖음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귀동냥과 어깨너머로 배운 ‘섣부른 지식과 기술’로 녹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부터는 진정한 지식과 기술을 갈망하기보다 얄팍한 상술에 눈을 돌렸고 자기가 만든 녹차를 ‘비법’秘法으로 포장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계속되어 웬만한 제다인들은 저마다 제다비법을 내세우고 있다.
기업형 제다업체의 차는 어차피 일정한 기계공정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품질의 편차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가내수공업형태의 제다업체는 그렇지 않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명차라고 평해도 될 만한 고품질의 차가 있는가 하면 모양만 갖춘 저급한 차가 수두룩하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인다.
천 년이 넘도록 현묘한 방법으로 만들어져 온 차를 그렇게 대충 만들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리 없다. 그것은 아주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차 후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녹차를 기피하는 차인들이 생겨났다. 어쩌다가 녹차를 접하는 일반인들이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기가 어려웠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우리의 차문화에 갇혀서 개인의 경험으로 묻히거나 소위 명현반응이라는 어설픈 한의학 이론에 의해 차단당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포된 ‘녹차는 냉하다’라는 일방적인 주장은 - ‘녹차를 마시면 속이 쓰리다’라는 무지無知한 소문과 함께 - 녹차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중국산 발효차 소비에 불이 붙었다. 그렇지 않아도 감각적인 색향미色香味를 선호하는 세대적 취향이 그대로 기름이 되어 타올랐다. 확고한 기반 없이 참살이 바람을 타고 소비를 늘려가던 녹차의 위치가 뿌리째 흔들렸다. 제다인들까지 우리 녹차를 지키려하기보다 발효차 생산에 뛰어들었다.
2. 녹차를 마시면 속이 쓰리다?
참살이 바람을 타고 높아진 차에 대한 관심이 소비증가를 불러왔고 중국산 차의 수입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이성적이며 담박한 녹차에 비해 감성적이고 화려한 향미를 지닌 중국 발효차는 자극적인 맛과 향에 길들여진 이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중국산 차는 정보가 제한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가 불가능하여 높은 이윤을 취할 수 있다. 상인들이 중국차 판매에 주력하는 것이 당연했다. 여기에 일부 차인들이 보따리 장사로 합류했다.
중국 발효차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유입되면서 ‘녹차를 마시면 속이 쓰리다.‘는 명제가 돌기 시작했다. 앞뒤 설명도 없이 유포된 얼토당토않은 명제가 소비자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녹차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녹차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분위기는 중국 발효차 판매에 전적으로 유리했다.
그렇다면 ‘녹차를 마시면 속이 쓰리다.’는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 녹차와 속 쓰림에 대한 관련성은 과학적 이론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동의대 식품영양학과 최성희 교수(한국차학회 부회장)는 "공복에 녹차를 너무 많이 마시면 속이 쓰리고 소화를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한두 잔은 괜찮다. 하지만 그 이상 마시면 산성물질인 녹차의 '타닌'성분이 빈 위장을 자극할 수 있다. 특히 위궤양 같은 위장병이 있는 사람은 타닌의 위 수축작용이 부담을 줄 수 있다.』(조선일보 2005. 7. 19)
『찻잎은 소화를 돕고 지방을 제거하는 효능을 갖고 있다.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병에 걸렸거나 위산이 과다하게 분비되는 환자들이 차를 마시면 좋지 않다. 정상적인 상태의 위 안에는 인산효소라는 물질이 있어 위벽세포에서 위산을 분비하는 것을 억제한다. 그러나 찻잎 중의 디오필린은 인산효소의 작용을 억제한다. 그것이 억제되면 위벽세포에서는 다량의 위산을 분비하게 되는 것이다. 위산이 많아지면 궤양병이 치료되는데 영향을 주며 병이 더 악화되고 통증이 생긴다. 그러므로 궤양이 있는 사람들은 연한 차를 마셔야 한다. 차에 우유나 설탕을 넣으면 위산분비를 저하시키는 역할을 한다.』(위준문 외 『차치료처방』)
이로보건데 ‘속 쓰림’의 원인은 찻잎에 함유된 특별한 성분의 작용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차는 공통적으로 속 쓰림의 증상을 불러올 수 있다. 다만 차나무의 종류나 생육조건에 따라서 성분의 함량이 조금씩 다르고, 제다법에 따라서 산화‧발효과정을 거치는 동안 유효성분이 증감되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보이차는 가공공예 과정에서 오랜 시간을 거치거나 고온고습 상태에서 화학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찻잎이 본래 함유하고 있던 성분들이 빈약해진다. 따라서 속 쓰림이 덜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녹차만을 겨냥해서 속 쓰림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음해에 가깝다. 비겁한 상업적인 의도가 느껴진다.
음차 후의 속 쓰림은 오히려 ‘개인의 견강과 음차 방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한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와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한 만성위장질환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차를 마시게 되면 속 쓰림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빈속에 차를 마시면 속이 쓰릴 수 있다.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차를 대접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다식을 함께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격식을 갖추는 차인들이 형식적으로 약간의 다식을 내놓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상대방의 뱃속 상태에 관심이 없다, 가는 곳마다 차만 연신 우려낸다. 뱃속이 건강한 사람도 이쯤 되면 견디기 어렵다. 오죽하면 ‘다식 좀 주소!’라는 장문의 글을 다 썼을까.
속 쓰림이란 개인건강에 대한 무지와 올바른 음차생활을 배우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문제를 방치함으로써 녹차는 속 쓰림의 주범으로 내몰리며 발효차에 밀려나고 있다.
3. 녹차는 냉冷하다?
이미 언급한대로 차의 냉성冷性은 많은 이들에게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음차 후 속 쓰림’과 마찬가지로 녹차는 ‘차의 냉성’에 있어서도 그 연장선상에서 주범으로 내몰리고 있다. 다른 차들이 이 문제로부터 비껴나 있는데 비하여 유독 녹차만 홀로 그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산화‧발효과정에서 냉성이 온성으로 바뀐다고 주장하며 발효차 옹호론을 펴고 있지만 녹차를 옹호하는 사람은 드물다.
‘산화‧발효과정에서 차의 기운이 변한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접해본 적이 없다. 다만 ‘찻잎을 고열의 가마솥에 덖는 과정을 통해서 냉기 및 독성을 제거한다.’는 논리는 짧은 한의학적 지식으로도 그 근거를 추론해 볼 수 있다.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불을 이용한 제다법은 녹차, 발효차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종류의 차를 만드는데 이용되고 있다. ‘솥 덖음’ 즉 초제炒制는 본초학의 법제法製 방법 중 하나로서 약재의 냉기나 독성을 다스리는데 이용되었다. 그리고 이 방법이 옛날부터 제다製茶에 이용되어왔다는 사실에는 이론異論이 없다. 찻잎의 냉기나 독성이 초제를 통해서 다스려져야 비로소 단일침출차로 마실 수 있다.
냉기가 몸에 들어오면 기혈의 순환이 원활치 않게 되고 부분적인 정체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 중의 일부가 호소하는 ‘음차 후의 이상증세들’ 즉 두통, 두중, 현기증, 가슴 두근거림, 숨 가쁨, 팔다리 저림 등의 증상을 이와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이 같은 증상의 원인은 차가 제대로 법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녹차 자체가 근본적으로 ‘냉기’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제대로 꼼꼼하게 법제된 녹차는 냉기와 관련된 그 어떤 이상 증상도 일으키지 않는다. 이는 국내산과 중국산에 꼭 같이 적용된다. 참고로 변질된 차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차를 시음하러 갈 때는 생강정과를 챙긴다. 잘못 만들어진 녹차를 시음하고 몸이 불편해졌을 때 먹기 위함이다. 생강정과는 음차 후 이상증세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음식이다. 생강의 한의학적 성질과 효능이 이를 뒷받침한다.
생강은 속을 따듯하게 해서 찬 것을 제거하며, 양기를 회복시켜 경맥을 통하게 해주고, 폐를 따뜻하게 해서 담음痰飮을 제거시켜주며, 몸이 시린 것을 제거해 준다. 그리고 생강을 꿀이나 조청에 조려서 만든 생강정과는 당분이 많아서 체내에 신속하게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산화‧발효과정에서 냉기가 온기로 바뀐다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근거를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개인적인 경험이기는 하지만 잘못 만들진 발효차는 국내산 중국산을 가릴 것 없이 녹차의 경우보다 음차 후의 괴로움이 더욱 심하다. 단, 산화‧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찻잎의 사기오미四氣五味 중에 어떤 것들이 조화되고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데에는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다.
발효차를 만드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초제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초제과정을 거친 발효차를 가리켜 전통발효차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녹차만큼은 아니더라도 꼼꼼한 초제과정을 거치치 않은 대부분의 발효차가 마시기에 부담스럽다.
제다법은 그 지역에서 나는 찻잎의 성질과 성분을 다스리기에 적합해야 한다. 타닌성분이 많은 중국산 찻잎으로는 발효차를 만드는 것이 색향미에 있어서 유리하고, 온난한 기후로 인해서 냉성이 적다면 초제의 중요성이 덜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 찻잎은 상대적으로 타닌 함량이 적기 때문에 녹차에 적합하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의 자연환경을 고려한다면 초제과정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발효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우리 발효차의 뿌리는 ‘잭살’이다. 그러나 잭살은 단방약單方藥이라기보다 약성을 지닌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차탕용茶湯用이다. 예로부터 남녘에서는 봄에 준비해 놓은 잭살 한 움큼과 생강, 모과, 돌배, 인동초, 말린 박속 등을 커다란 주전자에 넣고 펄펄 끓여서 겨우내 마셨다. 첫덖음은 물론 마무리 열처리도 하지 않은 잭살을 단일침출차로 마시지 않고 복방複方을 한 이유는, 차의 냉성을 제거하고 감기약으로서의 효능을 증대시키기 위함이었으리라. 우리 조상들의 놀라운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녹차는 냉하다.’ 이는 부정한 상업적 의도가 내포된 잘못된 주장이다. 동양의서나 다서가 전하는 차의 성질과 맛은 대체로 '고감미한苦甘微寒',이다. 즉 ‘차는 그 맛이 쓰고 단맛이 있으며 성질은 조금 차다.’ 는 것이다. 그러므로 ‘녹차는 냉하다.’가 아니라 ‘모든 차는 냉하다.’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명제에는, ‘모든 차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찻잎의 성질에 맞는 최적의 법제과정을 통해서 냉기가 다스려져야한다.’는 단서가 반드시 붙어야 한다.
‘녹차는 냉하다.’라는 이 짧은 한 마디가 ‘녹차의 품질저하’ 속에서 마치 진리인 냥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이 말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보다 감성적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아마도 탕색이 주는 따듯한 느낌과 풍부한 향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성적 색향미의 우리 녹차가 감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약점 아닌 약점을 뒤집어쓰고, 변명다운 변명 한 번 못해보고, 품질저하로 인한 책임을 뒤집어쓴 채 관심권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4. 우리 녹차가 좋다.
일반적으로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찻잎으로는 녹차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적인 이유는 찻잎의 성분 중에서 타닌의 함량이 적기 때문이다. 타닌이 적은 찻잎으로는 다양하고 풍부한 색향미를 지닌 발효차를 만들 수 없다. 중국의 황차와 제법이 전혀 다르면서도 황차로 불리는 국내산 발효차가, 향미에 있어서 중국산 발효차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허심탄회하게 말하자면 어떤 발효차에서는 시골의 재래식화장실 냄새가 난다. 이를 구수하다고 표현하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산화‧발효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보급되어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국내산 발효차의 향미에는 분명히 그 한계가 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약재나 식재를 통틀어서 국내산을 최고로 친다. 이 같은 인식은 판매 가격이 중명하고 있다. 인삼은 말할 것도 없고 곡물 중에도 10여 배나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이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혹자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를 음양오행설로 풀어내며 국내산의 우수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같은 논리가 아니더라도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 좋고 물 맑은 우리 땅을 생각한다면 굳이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이 땅의 소산은 모두, 사계절을 겪으며 우리 강산의 정기를 받아서 ‘옹골차게 맑은 기운’을 머금은 것들이다. 하물며 녹차라고 예외일까!
국내산 찻잎에는 일본산과 대만산 차에 비하여 일반적으로 봄 차에 많이 함유되는 총질소, 가용분, 카페인, 데아닌, 유리아미노산은 물론 여름 차에 많은 타닌과 유리환원당 등 전체적으로 맛 성분의 함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효소산화를 받지 않는 녹차에는 비타민 C, 카로틴 등의 비타민류, 기타의 산화되기 쉬운 성분도 분해되지 않고 거의 같은 조성으로 남아있다. 이에 비하여 발효차는 제다법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찻잎 본래의 성분들이 효소산화과정에서 상당히 다른 조성을 지니게 된다.
예컨대 카테킨의 함량은 녹차에 많고, 발효시키는 차에서는 이들 카테킨류가 산화중합함으로써 함량이 적어진다. 녹차용(10-18%)에 비하여 타닌 함량이 높은 중국종이나 홍차용 품종(20-25%)을 원료로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우롱차나 홍차는 카테킨류의 함향이 녹차보다 약간 낮은 편이다. 그러나 보이차(Puar tea)와 같이 증기열처리 후 퇴적발효시키면, 아미노산류는 분해되고 카테킨류는 극도로 산화중합하여 함량이 아주 적어진다. (참조: 정동효 김종태 편저「차의 과학」)
우리 녹차는 원료인 찻잎의 우수성과 제다법에 있어서 어떤 종류의 차보다 뛰어나다. 한약재로서의 기감氣感 그리고 생화학적 성분과 효능에서 분명히 월등하다. 잘 만들어진 녹차만큼 기운이 맑고 색향미가 깨끗한 차는 없다. 이는 아마도 우리 찻잎의 우수성과 더불어 찻잎 본래의 성질과 성분을 가장 다치지 않도록 하는 섬세한 제다법 때문일 것이다.
초의선사(草依 : 1786~1865, 본명 張意恂)는 동다송에서 우리 차의 우수한 품질에 대하여 이렇게 읊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차는 원래(중국의 차)와 색향기미가 공히 같다. 육안차는 맛이 좋고 몽산차는 약효가 좋은데 옛사람은 이 둘을 겸했다고 평판했다.’(東國所産元相同 色香氣味論一功 陸安之味蒙山藥 古人高判兼兩宗 )
우리 차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했던 고 최계원 선생는 이미 사반세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차는 그 품질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 사람들의 자찬이 아니다. 일본이나 자유중국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다. 물론 한국의 차가 홍차를 만드는데 적합하지는 않다. 일본의 차도 마찬가지다. 홍차는 역시 인도나 스리랑카산을 친다. 그러나 녹차는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품종일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 연구하고 열심히 개발한다면 반드시 그러한 날이 올 것이다. 한국 차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최계원. 「우리 차의 재조명」)
5. 결론
어느 누구도 근거 없는 주장으로 녹차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 ‘속 쓰림’은 차의 성분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위장질환을 지녔거나 혹은 빈속에 차를 마셨을 때 겪는 일반적인 현상일 뿐이다. 개인의 건강이나 음차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니 만큼 유독 ‘녹차와 속 쓰림’을 관련지어서 강조하는 것은 그 의도가 매우 나쁘다. 단 발효차는 화학적 산화중합반응에 의해서 찻잎 본래의 성분이 빈약해지기 때문에 속 쓰림이 덜 할 수 있다.
차의 냉성은 찻잎을 원료로 사용하는 이상 모든 차에 해당된다. 다만 차나무의 종류나 지역적인 생장조건에 따라서 차이가 날 수 있다. 우리 녹차의 경우, 찻잎의 뛰어난 기운을 생각한다면 냉성은 특별히 고려되어야한다. 따라서 꼼꼼한 초제(솥 덖음)와 유념(비비기)을 통해서 냉기를 다스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렇게만 하면, 뛰어난 기운과 성분을 지닌 우리 찻잎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명차로 만들어질 수 있다. ‘녹차는 냉하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감성적이고 다양하고 풍부한 색향미를 즐기려면 중국 발효차를 마시라. 그러나 이성적이고, 깊고, 담박한 색향미를 원한다면 녹차를 마시라. 그리고 찻잎 본래의 성분과 효능을 마시고 싶다면, 더 나아가서 차의 맑은 기운으로 심신을 닦고 싶다면 우리 녹차를 마시라.
소비자들은 감성적으로 차에 접근하기보다 이성적으로 차를 이해하고 선택해야 한다. 다업 종사자들은, 일부 상인들과 차인들의 세치 혀에 의해서 밀려난 우리 녹차의 현 위치에 대하여 통감해야 한다. 섣부른 판단으로 발효차생산에 뛰어들지 말고, 녹차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음차요령을 보급하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진력해야 한다,(월간 Tea & People 2009. 4 기고)
글쓴이의 다른 글 참조
* 차에 미친 사람들의 담론 / * 다식 좀 주소 / 월간 Tea & People 2006. 12
* 보이차(중국차) 뒤집어 보기 / 월간 Tea & People 2007. 7 & 8
* 건강한 음차생활을 위한 담론 / 월간 Tea & People 2008. 8
* 녹차산업이 고사위기라는데 / 월간 Tea & People 200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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