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교 문 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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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와 문학을 이해해야 한다.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문학이란 언어를 매개로 하여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허구이다. 그렇다면 불교와 문학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언어라는 공동의 토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이용하는 방식은 또 다르다. 종교는 언어를 수단으로, 문학은 언어 자체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불교문학을 규정하는 범위가 다르게 되는데, 크게 세 가지의 관점으로 얘기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불교 경전 및 부처의 가르침에 관계되는 저작물 일체를 불교문학으로 보는 경우로 불교와 문학의 한계를 정할 수 없게 되어 문제가 생긴다.
두 번째는 불교적인 것을 표현한 저작물을 말하는 데, 첫번째 것과 유사하지만, 여기에는 불교경전과 불교창작문학작품만을 포함한다.
세 번째는 불교문학을 순수하게 문학의 영역으로만 보고 문학 형식에 불교적 사상을 담고 있는 창작물만을 말할 경우인데, 이 경우에 경전은 소재로서의 가치가 있을 뿐이며 그 자체로서의 특성은 약하다.
이상의 세 가지 관점을 통해 불교문학을 정리해 보면, 불교경전문학과 불교창작문학을 불교문학이라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종교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불교문학 역시 불교의 진리를 대전제로 출발하여 작가의 상상력과 문학적 향기가 더해져 불교 정신이 구현될 때, 문학을 도구로 하여 사람들의 가슴에 알게 모르게 불교의 향기가 스며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선시는 선의 세계를 언어로 표현해낸 것인데, 사실 선의 세계는 깨달음의 세계로, 어떤 언어나 문자도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체의 형식적인 틀을 거부한다. 어떤 형식의 틀에 갇히면 이미 본래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선의 세계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우며, 단지 마음으로 마음을 깨닫는 증득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서 언어를 빼면 달리 의사소통의 길이 없기 때문에 문자를 통해 뜻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적인 선문학에 대한 연구는 김운학(金雲學) 스님의 ‘불교문학의 이해’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후 선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나오면서 국문학의 새로운 입장을 열어갔으며, 선문학은 문학적 기교보다 선의 심오한 내용이 더 우선되어야 했다. 그 심오한 내용 속에서 문학적 기교가 흐르는 물처럼 자연적으로 유출되어 나와야 하는 것이다.
불교 소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하여 불교의 사상을 담고 있으면서 일반적인 소설의 형태를 취하는 창작 작품들이다.
인간 구원의 수행적 삶이 불교의 방법론이라면 문학이 지향하는 세계 또한 그와 같은 것으로 작가가 지향하는 문학의 포괄적 주제와 불교가 추구하는 깨달음, 부처의 경지는 그 성격상 동질감을 지닌다.
불교가 추구하는 초월적 사유와 문학이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 삶의 반영은 그 위상의 차이가 있을 뿐 성격의 차이가 없다고 보여진다.
우리나라에서 불교 소설의 등장은 조선시대 소설이 생겨나면서 함께 나타나는데, 대표적 작품으로는 김만중의 ‘구운몽’을 들 수 있다. 이 책에는 삶의 무상함과 극락왕생의 모습들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작자 미상의 불교 소설들이 많이 있다. 그 외에 불경(전생담)을 소설화한 ‘금우태자전’, 불교를 멸시하던 옹고집 영감이 독실한 불자로 변모하는 ‘옹고집전’, 부처님의 생애를 담고 있는 ‘석보상절’, 안락국 태자이야기를 소설화한 ‘안락국태자전’ 등이 있으며, 근대 들어와서는 이광수의 ‘원효대사’, ‘이차돈의 사(死)’와 박종화의 ‘다정불심’ 등 역사소설도 등장하였다. 이 밖에도 김동리의 ‘등신불’, ‘까치소리’ 등이 부처님의 세계를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설화란 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이다. 이것은 사실 자체를 그대로 이야기 한 것이라기보다는 흥미와 교훈을 위해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설화는 구전에 적합하게 단순하면서도 잘짜인 구조를 지니며, 표현 역시 복잡하지 않다.
불교설화는 불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불교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쉽고 흥미있는 비유와 인연 설화를 통해서 붓다의 사상을 되도록 체험적으로 이해하고, 불교적인 삶과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즉, 하나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시대의 윤리도덕과 말라빠진 지혜에 윤활유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설화가 담겨 있는 불교경전은 철학적 사상과 논리를 문학적 형식으로 표현한 종합 예술인 셈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경전에 담겨진 설화들을 불교문학의 하나로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불교 수필은 같은 문학 갈래 중에서도 독특한 성질을 지니는 문학이다.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여 그 형상과 존재의 의미를 밝히기도 하고, 날카로운 지성으로 새로운 양상과 지향성을 명쾌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서정과 서사에 의한 정서적 감동이나 허구적 흥미를 주기도 하면서, 다른 문학양식과의 상호 견인작용을 적절하게 포용하여 수필의 영역은 광범위하게 확대되기도 한다.
수필은 그 뜻대로 ‘붓을 따라서, 붓가는대로 써놓은 글’로 그때 그때 보고 느낀 것들을 산문으로 표현한 글이다.
수필은 그저 담수와 같은 심정으로 바라본 인생이나 자연을 자유로운 형식에 담아내는데, 인생을 통찰하고 달관하여 서정의 감미로움이 드러나기도 하고 지성의 섬광이 번득이기도 한다. 그러기에 수필은 독자의 심경에 부딪치기도 하고 사색의 반려가 되기도 하여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하고, 철리의 심오한 명상에 잠기게 하기도 한다. 무한한 제재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하여 인생의 향기와 삶의 성찰을 더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생이나 사회, 역사, 자연 등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느낀 것과 생각한 것 모두를 자유자재로 서술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필은 무엇이라도 다 담을 수 있는 용기이지만, 그러한 제재는 작가의 투철한 통찰력과 달관에 의해서 선택되어야 하고,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를 거쳐 나오는 생생하고 독특한 것이어야 한다.
문학은 시대와 역사, 사회적 환경의 산물로 한국의 역사와 더불어 공존해온 불교사상, 불교정신이 한국문학에 훈습되어 있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한국인의 정신 세계에 거부감없이 전향적으로 승화되어 녹아있어 한국인의 외양적 현실 생활과 내면적 정신세계에 오랫동안 숭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불교의 심오한 영향은 특히 문학의 경우 한결 두드러진다. 정제된 한국문학의 장을 여는 신라인의 노래는 바로 불교에 기반한 지혜와 신비의 표현이었고, 그 이래로 수많은 한국 문인들은 창조적 영감과 상상의 원천을 불교에서 구했다.
고대 시가는 물론 일찍이 신라 향가에 와서 불교 시가 문학의 꽃이 피웠으며, 월명사의 ‘제망매가’, 충담사의 ‘찬기파랑가’에서 보여준 고결한 불교정신의 문학적 승화는 시대를 초월하여 애창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려때 편찬된 ‘삼국유사’는 시가와 설화 즉 시문학과 산문문학의 일대 집대성이다.’ ‘삼국유사’는 역사책이며 불교문학사이며 또한 손색 없는 문학 교과서이다.
한국 현대 문학에 와서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 박두진의 ‘나룻배와 행인’ ‘찬송’ ‘복종’ ‘알 수 없어요’, 서정주의 ‘귀촉도’ ‘동천’ ‘추천사’, 조지훈의 ‘승무’ ‘고풍의상’ ‘낙화’, 박목월의 ‘불국사’ ‘보살’ 등이 매혹적으로 불교정신을 시가로 승화시켰다.
설화에 뿌리를 둔 산문문학 역시 이광수의 ‘원효대사’ ‘조신의 꿈’, 박종화의 ‘이차돈의 사’, 김동인의 ‘꿈’, 김동리의 ‘등신불’, 김정한의 ‘수라도’, 한승원의 ‘포구의 달’ ‘아제아제바라아제’, 김성동의 ‘만다라’ 등이 중후한 불교 소설 문학을 창출해냈습니다. 이러한 성과들은 물론 전시대에 축적되었던 향가, 선시, 악장, 한시, 가사 등의 자양과 ‘왕랑반혼전’ ‘구운몽’ ‘심청전’ 등의 고전 불교문학의 영향을 계승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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