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다래 금당 최규용/한국 차문화와 금당

[스크랩] 금당 최규용선생님

매공tea 2008. 10. 25. 22:21

중국의 고전소설 '삼국지'를 보면 유비가 얼마나 효자였는지 강조하는 대목이 나온다. 유비는 어머니가 죽기 전에 맛보기를 원했던 차(茶)를 낙양에서 온 상인에게서 구입했다. 돗자리와 발을 짜서 2년 동안 모은 은(銀)과 칼에 매달린 진주까지 내주고 조그만 병에 든 차를 얻었다. 차 선물을 받은 유비의 어머니는 "황후의 어미라도 이런 호강은 못 누릴 것"이라며 조상들을 모신 사당 제단에 차 단지를 올려놓았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물을 마시듯 차를 즐기지만, 2천년 전에는 아주 귀했던가 보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들어왔다는 기록과 흥덕왕 때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경덕왕이 충담이라는 스님을 만나 차를 마셨다는 대목이 나온다. 차맛이 아주 독특하고 차그릇 안에서 형용할 수 없는 부드러운 향기가 풍겼다고 한다. 경덕왕은 그에게 왕사(王師)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는 '안민가(安民歌)'라는 향가 한 수를 남기고 떠났다. 석굴암의 문수보살상에도 찻잔을 들고 헌다(獻茶)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초의선사가 조선 후기 우리나라 다도(茶道)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금당(錦堂) 최규용 선생은 현대 한국의 차 문화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금당이 18세 때 일본의 어느 여관에 묵었는데, 안주인이 노오란 물 한 잔과 얄팍한 과자 두세 개를 갖고

와서는 공손히 절을 하고 나갔다.

그 물은 시금털털한 맛에 냄새가 고소하고 구미를 당겼다고 한다.

금당이 다도 보급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선생은 중국 명차 산지인 쑤저우, 항저우 등지와 차 집산지인 톈진, 베이징 등을 8년 동안 둘러보았고,

우리나라 차 유적지를 발굴하고 연구해왔다. 지난 2002년 100세를 일기로

부산 송도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차와 함께 한 평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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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錦堂) 최규용 선생은 1903년 경남 통영군 용남면 무주리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토목과를 졸업한 금당 선생은 차문화 연구서를 펴내는 한편 한국 육우다경연구회 회장,부산차인연합회 고문을 지내는 등 한국 차문화 연구와 차마시기의 확산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그는 1920년대 일제시대 국내 최초의 도개교인 부산 영도다리의 설계에도 기사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 나래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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